나는 누구인가?

레빈, 아마도 톨스토이의 철학관

Maka! 2024. 5. 10. 17:24

'모든 철학적인 이론이 인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 이제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을 만큼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야릇하게 느껴지는 사상의 경로를 통해 알리려는 것도 그것과 똑같은 게 아닐까? 그 어떤 철학자도 저 농부 표도르와 똑같은 정도로, 혹은 그 이하로 인생의 주요한 의의를 예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그저 모호한 지적 도정을 통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 쪽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학설 가운데 뚜렷이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성으로 알게 된 게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지고 나에게 계시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마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교회가 가르치는 주요한 것에 대한 신앙에 의해 알고 있는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저작에 드러나는 기독교에 기반한 관념적 이야기들은 흥미롭습니다. 헤겔의 절대정신이 떠오르기도 하는 필연적인 역사관(어쩌면 정반대의 사고에서 출발하지만 기계론적 사고관과도 비슷할지 모르겠네요)이 미시적인 개개인의 차원에서도 구현된다는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악한 행위들은 사탄의 역사로 해석하는 거 같으면서도,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자유의지 속에 신의 의지가 깃들었다고 해야 할지. 그것이 상호작용한다고 해야 할지. 이러한 부분은 제가 옛날에 읽었던 신학 서적의 영향을 받은 해석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길희성 교수의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라는 서적에서 신의 의지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자유가 추동하는 대로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그러나 그것이 곧 - 결국 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뭐 그런 관점이 나왔던 거 같은데..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건 그렇고, 우리가 결국 철학을 함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에서 그것을 다른 각도, 다른 창(frame)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고, 역사적으로 탈레스와 소크라테스 때부터 진리를 그렇게 탐구해 온 것인데, 그것은 어찌보면 참으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의미 없는 짓거리일지도 모르는거죠. 이미 완성되어 있는 세계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자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은 성현의 지혜 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들어있지 않은 찌꺼기일 뿐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 텍스트의 한계 속에서 우리는 찌꺼기를 긁어모아가기만 하는 건 아닌지.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직관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파악할 수 있다고 치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지. 철학엔 무슨 의의가 있는지. 그것은 무용한지 유용한지. 만약 무용하더라도 철학을 하는 의미가 있을지.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거 뭐 책 읽고 공부하기 귀찮으니 별 잡생각이 다 드는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