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평론

오류 속에서 넓어지는 생각의 지평

Maka! 2025. 2. 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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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저격’ 곽민수 소장, 이번엔 유현준 건축학 교수 비판 “사실관계 부정확한 것들...

1줄요약 : 유현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류가 너무 많아서 2장이상 못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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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논리적 도약을 시도하는 행위' 를 '도약적 사유' 라고 표현하고 그런 행위를 디스하고 있다. 일견 합리적인 말이다. 이어령 센세를 까는 건 머리를 긁적이게 하지만, 뭐 그럴수도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이 글에서 지적하듯이 학자들, 보통 인문학자들의 경우 단편적인 사실적 근거를 통해 많은 것을 해석하려고 하는 행위를 종종 보여주고, 그 사실적 근거조차 틀린 경우가 많다. 이것은 사실과 근거를 단순 수단으로 사용하느냐, 아니면 사실과 근거를 밝혀내는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거 같다.

 

단순히 따져봐도 이런 사례는 많다. 소칼의 지적 사기에 무기력하게 당한 포스트모더니즘부터 보드리야르의 물 분자 개드립,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 숱하게 지적당하는 부분들이라던지. 한 분야의 박사고 전문가라고 해도 다른 분야에선 무지한 경우가 많다. 비슷해 보이는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창조과학도 카이스트 출신 과학자들이 주창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따져봐야 하는 것은 그것이 과연 잘못된 것인가? 라는 점이다. 당장의 정설에서 틀린 말을 할 지언정 그것이 내용에서 곁가지에 불과하고 핵심은 통찰력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단순히 부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고전역학을 격파하는 것이었다. 그의 논리를 물리학계가 단칼에 "정설과 다름." 이라고 잘라냈다면 어땠을까? 물론 이 주장에는 비약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

 

하이데거가 고흐의 그림을 분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멋드러진 미학적 분석이었는데 알고보니까 전제부터 틀렸더란다. 그럼 이 내용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걸까? 하이데거는 미친 망상병 나치 추종자따리로 전락하는 걸까? 아닐 것이다. 작품에 대한 단순한 사실이 다르다고 해도 작품에 대한 비평은 틀리지 않는다. 작품의 해석을 자기 생각대로, 영화면 감독, 그림이면 화가의 의도와 다르게 하는 경우도 흔하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어떻게 해석하든, 작가의 해석이 문학계에서 정설은 아닐 것이다.(관련 내용은 나무위키를 참조하기 바란다.)

 

아렌트의 아이히만 얘기는 좀 더 친숙할지 모른다.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은 아이히만이 찐 나치 추종자였다고 해서 틀린 주장인걸까? 아렌트의 전체주의 해석을 비판하는 사람이야 꽤나 존재하지만,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통찰력이 있고, 보편타당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내가 모호하게 기억하는 사례 중에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 설명하던 중, 동남아시아의 삼모작에 비해서도 한반도의 농업생산량, 즉 쌀 생산량이 높아 조선 때부터 경제가 동남아 평균보다 성장했다.. 라는 얘기가 적혀 있는 책이 있었다. 근데 태국학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건 완전 헛소리다. 태국의 쌀 생산량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지금은 아니지만 국제 쌀 가격이 태국산 쌀 가격으로 결정되던 적도 있었다. 보릿고개, 기근, 혼.분식 이런게 존재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유현준의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솔직히 고고학이나 농업혁명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했겠는가 건축학자가. 사피엔스랑 관련 책 몇 권 읽은 수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책을 덮고 '개소리' 취급하면서 넘겨 짚을 사안인걸까? 이것 또한 곽민수의 '도약적 사유'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이 글 또한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