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독서를 배우는가?

Maka! 2023. 11. 6. 23:57

고2 때, 사회문화 선생님은 아이들의 발표 시간에 태클을 많이 거셨다.

첫 발표였나, 베버 관련 주제를 채택해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대해 설명하던 아이가 자신의 발표 시간보다 지적받은 시간이 더 길었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아무말대잔치로 적당히 발표를 넘어갔지만, 생기부에는 내가 발표한 내용과는 다른게 적혔었다. 아마 내 발표 상태가 영 좋지 못해 그랬으리라..

사회학 개론서를 두어권 읽으면서, 나는 이제 조금이나마 그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우리들의 발표는, 정말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개론서는, 학문을 접해보지 않은 일반인과 신입생을 위해 저술된다. 그렇기에 방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고, 자연스럽게 깊이는 얕아진다.

고등학생 시절, 성적을 떠나, 대다수의 아이들은, 개론서 수준에도 훨씬 못미쳤다. 어려운 사회탐구 문제들은 척척 풀면서도,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 마르크스의 자본가, 무산자 이분법과 베버의 다중 계층 이론의 결합으로 분석할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의 차이 - 에 도달한 아이가 있었을까. 우리반에는 없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문제점은, 개인적으로 세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비투스에 대해 빠르게 접할 수 있다. 무엇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검색창에 네 글자만 검색하면, 각종 사이트에서 아비투스에 대해 알려준다. 문제는,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만큼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위키피디아의 정확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학자가 저술한 서적과 위키피디아의 정확도는, 위키피디아도 아니고 발췌도 필요 없고 사견 위주인 나무위키 같은 곳의 정확도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우리가 조사해 볼만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빠르게 정보를 찾아, PPT 디자인에 적당히 신경을 써 준 뒤, 발표 준비를 마친다. 최소한 나 자신은 이런식으로 했었다.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첫 번째, 우리에게 발표를 위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몇주 전부터 고지를 한다? 평일엔 학교, 주말엔 학원에 하루종일 있는데, 양질의 발표 준비는 자신의 휴식/자습 시간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차라리 대충 점수만, 생기부만 만족할 정도로 준비해 가고, 부족한 건 지적으로 때우는 게 낫지 않을까.

두 번째,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건데, 우리는 독서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이론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독서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독서란 기본 소양이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은 그것을 충족시켜 주고 있는 것일까. 학생들이 읽는 텍스트의 양은 부족하지 않을지 몰라도, 교과서와 교과 과정 내의 공부를 위한 교재 위주일 뿐이다. 사회를 배울지라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 따위 필요 없는 것이다. 문학을 배우더라도, 다른 나라의 문학작품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다. 독서를 배우더라도, 시험을 잘 보면 그만일 뿐, 책을 읽을 필요 따위는 없는 것이다..

컴퓨터활용능력은 공부해도, 독서활용능력을 공부할 시간은 없다. 수업시간엔 수업을 듣고, 자습시간엔 문제를 풀고, 학원에 가도 마찬가지고, 학교와 학원을 거치면 집에서는 잘 시간도 온전히 주어지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에게 수면권이 온전히 보장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세태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나는 그저 책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읽어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