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진보정당 집권기 분석을 통한 한국 진보정당의 방향 제시
제목은 거창하지만 깊이가 얕은 글이니 양해 바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작성하는 글입니다. 모쪼록 읽고 시간낭비가 되지 않길 바라며..
시작하기 전에 일본 진보정당 분석의 필요성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왜 우리는 일본의 진보정당의 과거를 보며 배워야 할까요? 저는 지리적으로 일본이 가깝고, 문화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은 점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보통 선거를 통한 진보정당의 집권을 노리는 사람들의 경우 모델은 서/북유럽의 진보정당이지요. 하지만 이 지역의 전반적인 역사와 진보정당사를 보면 여러가지 차원에서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너무나 다른 점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그에 비해 일본 같은 경우 앞서 말한 대로 유사한 부분이 많으니 직접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어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두번째로, 일본 진보정당은 집권에 성공했으나 통치에 처절히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자민당 일당 우위 집권 체제가 유지되어 왔던 소위 "55년 체제"가 깨진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시절부터 보더라도 1993년 8월 - 1996년 1월, 그 이후 민주당의 집권기 2009년 9월 - 2012년 12월까지 다 더해봐도 채 6년이 되지 못하며, 집권기에도 양원 장악에 실패해 부침을 겪은걸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 일본은 비자민당이 얼마나 통치 능력이 부족한지 보여줬습니다. 이를 통해 진보정당이 집권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부분을 보완해나가야 하는지 반면교사 삼을 수 있기에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먼저 일본 사회당의 만년야당 시기부터 보도록 합시다. 왜 일본 사회당은 만년야당에 머무를 수 없었는가? 그것은 보통 과거 일본의 중대선거구제 채택으로 인한 선거구조로 인해 자민당 후보와 일대일 구도가 아닌 다대다 구도로 선거가 치뤄졌으며, 그렇다 보니 자민당 후보를 떨어뜨려 의석을 많이 가져가려고 하는 제로섬 게임적인 사고가 아닌 한 선거구에서 한 석이라도 건져 개헌선 저지와 같은 부분에만 집중해, 계속해서 야당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컸지만 여당이 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의석수에 안주하였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이 집권을 하기 위해선 확고한 집권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이제 무라야마 도미이치 집권기를 분석해봅시다.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마지막 사회당 출신 총리인데요(최초이자 마지막인 줄 알았더니 전후 가타야마 데쓰 총리가 있었군요), 자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집권 뒤 기존의 당론과 다른 우경화된 행보를 보여 지지층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줬던 총리였습니다. 짧은 집권 이후 사회당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단기간의 의석 증가, 지지율 상승을 노리고 우경적 행보를 보이는 건 굉장히 위험하며,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기본적인 당의 진보적 방향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라야마 내각이 실패한 이후 일본 야당계는 얼마 뒤 민주당을 중심으로 개편되었습니다. 민주당은 고이즈미 내각 시절까지는 자민당 집권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그 이유는 의석 수 부족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민당 내에서도 의견 충돌과 선거때 자민당 후보와 고이즈미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후보가 맞붙는다던지 하는, 실질적인 야당 역할을 자민당 내부에서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이즈미가 내려온 이후, 1기 아베 내각 -> 후쿠다 내각 -> 아소 내각 등을 거치며 민주당은 집권의 기회를 잡는데, 이와 같은 이유는 자민당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이즈미는 약 5년의 집권기 동안 (정책이 성공했는지는 이견이 있지만)소위 '구조개혁'이라는 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기 위한 긴축, 민영화로 대표되는 이러한 공격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일본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았습니다. 국제적인 경기 호황의 영향도 있었지만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경제성장이 일어났기도 하구요. 하지만 1기 아베 내각 출범 후 3년동안 총리가 3명씩 바뀌면서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의 개각에 대한 정치적 피로 증가와 신뢰를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통령이 1년에 1번씩 바뀌는건데, 좋을리가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도 내각 인사들의 비위사실, 정체성 없는 애매한 정책, 민주당의 적극적인 비토 등 여러가지 차원에서 무능하다고 인식된 자민당 대신 일본 국민들은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준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야당에게 중요한 건 여당 흔들기입니다. 정말 정책적으로 방향성이 맞는 법안이라던지면 몰라도, 대부분에 사안에서는 정치적으로 봤을 때 여당에 대한 공격과 여당이 찬성하면 야당이 반대하는 형식의, 대립구도를 보여주며 여당을 방해해 그들이 무능하다고 인식시키는 것이 차후 집권에는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제 민주당 내각이 왜 기울어졌는지 봅시다. 먼저 민주당이 선거를 승리해 양원을 장악한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1년도 안돼 고꾸라졌는데, 이와 같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건 일본 사회의 비대한 관료집단과 친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사안인데, 선거에서 이긴다고 해서 전국민이 우리말을 들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오산입니다. 특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면 더더욱! 하토야마의 정치적 무능이든 관료 집단이 너무 파워가 셌든 집권 시작할 때 내놓았던 정책들은 제대로 시행이 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이 뜻대로 되지 않자 하토야마 내각은 사퇴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한가지 미스테리한 사안이 존재하는데, 바로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옮기려고 할때 관련 부처의 고위 관료들이 와서 미군의 규정상 옮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문서를 보여주고, 하토야마는 이를 보고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을 철회한 뒤 사퇴를 했습니다. 근데 그 이후 미군에는 그런 기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면, 하토야마는 관료들에게 속아서 정책을 포기하고 총리직을 내려놓은 셈이 되지요. 본인도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고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민주당이 관료 집단 통제에 실패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간 나오토 내각 ->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만,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엄청난 악재와 하토야마 내각 시절 천명한 선명한 정책을 보여주지 않고 자민당과 별 다를게 없는 중도적인 정책들을 보여주면서 일본 국민들에게 민주당은 무능하고, 자민당과 별 다를게 없다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결국 자민당은 그 이후 선거에서 별다른 지지층 확장 없이(2009 총선 때와 받은 표의 비율은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선거에서 승리한 뒤, 2기 아베 내각이 출범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빅텐트 정당의 단점이자 당론을 세우지 못하면, 즉 여당과 차이점을 보여주지 못하면 제 아무리 좋은 정치를 한다 해도 안된다는 건데요, 민주당은 특징 상 반 자민당을 기치로 한 인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당론은 진보적이었지만 우파 성향의 인물들도 꽤 있었습니다. 노다 요시히코가 대표적이지요. 이와 같은 사례를 봤을 때, 확장성이 전무해서도 안되지만(이러면 집권이 불가능하겠죠), 우파 성향의 인물들은 당 내에서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집권을 해도 당 내 우파들에게 시달려 정책 시행이 힘들어질테니까요.
이후 일본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민주당의 후신인 입헌민주당은 아직은 제1야당을 유지중입니다만, 오사카 지역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유신회에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죠(물론 유신회는 아직 생긴지 얼마 안된지라 언제 또 총선에서 휘청거릴지 모릅니다만)
한국의 진보정당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만, 항상 집권을 위해 힘쓴다고 믿기에, 이와 같은 글을 적어 나아갈 길을 조금 더 선명하게 하기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짧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