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거의 항상 TV가 켜져있다. 어렸을때부터 거실엔 항상 누군가가 있는 게 일반적이었고(대부분 할머니였던거 같다), 그와 함께 TV가 켜져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초등학생때까지만 해도 TV를 많이 봤던거 같은데, 어느샌가 나와 TV사이는 멀어져 있었다. 왜 잘 보던 TV를 끊고 컴퓨터에만 열중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방의 구조가 바뀌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TV 프로그램에 어느새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난 어렸을때부터 애니메이션 채널과 예능 프로그램 외에는 거의 보지 않았는데, 좋아하던 프로그램들은 내가 커가면서 같이 변화하기 마련이었다. 내가 썩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12일은 어느새 멤버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고, 무한도전도 멤버가 변화하면서 재미는 자연스럽게 하락했다. 짱구는 못말려는 여전히 재밌었지만, 스폰지밥은 기괴해졌고, 핀과 제이크의 행방불명은 어느새 내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원래부터 이해는 잘 안됐던거 같지만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갔고, 12일은 이제 누가 출연하는지도 모르겠으며, 무한도전은 종영하고 놀면뭐하니는 여러차례 변화를 거쳐 역시 유재석 말고 누가 출연하는지 잘 모르겠다. 유행은 어느새 여행예능, 관찰예능으로 변화했고, 과거였다면 방송에 출연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인물들이 공중파 예능에 속속들이 자리를 잡고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혁신이지만, 나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나는 아직도 밥을 먹을때면 10년은 족히 넘은 무한도전 또는 라디오스타를 틀어놓는다. 12일은 지나고보니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어렸을땐 너무 좋아했었는데. 아빠가 보는걸 따라보며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라디오스타가 이제 너무 재밌는 걸 보니, 사람의 취향이란 갈피를 잡을 수 없는거 같다. 옛날 라디오스타를 보면서 재미를 느꼈던 아빠는 2023년에 송출되는 라디오스타를 보고 있고, 나는 아직도 10년전 예능에 머물러있으니. 나이는 어린데 왜 내 취향이 더 구식인걸까.

 

아버지는 어렸을때부터 얼리어답터였다고 말하곤 했다. 솔직히 얼리어답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나보다는 시대에 맞춰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10년도 더 전부터 인터넷 방송에 관심을 기울였으며(나도 대도서관 유튜브는 10년전부터 보긴 했지만, 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순 없겠다), 갤럭시 A34를 쓰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아이폰의 감성에 빠져 최신 아이폰을 사용하고 계신다. 나는 언제쯤 아빠를 따라갈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내 나이때 했던 것들 중 10%로도 나는 하지 못하는거 같다. 나는 운전면허도 없고, 벌레도 한 마리 제대로 못잡으며, 밖에 나가서 1시간 이상 있는 것도 힘든 인간이다. 자극적인걸 싫어하지는 않지만(노르웨이의 숲은 확실히 다른 소설들보다 흥미로웠다. 특히 특유의 성적인 묘사의 차원에서), 요즘 TV프로그램에는 적응하지 못하겠다. 연애 프로그램은 그나마 순한 편이다. 곧 이혼을 앞두고 있는, 혹은 이혼한 부부의 모습,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발악을 하며 울고불고 난리가 난 아이와 그 아이를 달래지 못해 안달복달한 부모(때때로는 같이 발악을 하며 싸우기도 한다), 교통사고 현장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보며 분노를 표출하는 패널들(운 좋으면 중상, 운 안좋으면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사람들은 E.H.카와 같은 방법론으로 문제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나이트크롤러 속의 시청자들처럼 자극적인 영상을 보는것에만 집중한다고 느껴지는 건 나의 생각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보는 무한도전 같은 예능도 정신건강에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10년전 방송이 지금의 방송보다는 나한테는 잘 맞는 것 같다. 나의 발전이 멈췄으면 어떠랴. 나에겐 유튜브에 보관된, 언제나 플레이 할 수 있는 영상들이 있는데.

 

읽고 싶은 책은 많다. 그 중에는 읽기 싫은 책도 있다. 하지만 읽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내면속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 규칙(rule)이다. 왜 이런 규칙을 정했을까. 일종의 강박이자, 심하게 말하면 정신병일 것이다. 뭐 어떠랴, 내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관심이 일본의 경제사에 관한 관심보다 덜하다고 해도 논어에 대한 관심보다는 많을텐데(사실 논어에 대한 관심도 많다. 근데 책을 읽는 건 엄두가 안난다. 사서삼경을 읽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을까? 난 잘 모르겠다.).

 

소설은 참 신기하다. 변신의 그레고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정기적으로 식사를 공급받는 나의 행태와 비슷하고(물론 나는 인간이다보니 가족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긴 한다), 대성당의 단편들은 내 인생과 별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리얼리즘에 이끌리는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무진기행은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내 인생에 손꼽을만한 단편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니(무진기행도 안 읽었지만 내가 김승옥을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가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비염이 심해지는 날씨다. 덥지는 않지만 다리를 꼬고 있으면 땀이 차 찝찝하고, 알레르기성 비염은 약을 아무리 먹어도 낫지 않으며, 화요일에는 여행을 가야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쩌자고 15000원을 지불해 숙소를 예약했을까. 이동하다가 숨쉬기가 힘들어져 생을 마감하지는 않을까.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침을 삼키지 못해 죽을리는 없다. 기절 혹은 구토는 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자고 싶지만 소화가 되지 않아 누울 엄두도 안난다. 밥을 평소보다 더먹은것도 아닌데 왜 이런지. 하지만 오늘은 마무리해야겠다. 내일은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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