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에서 옮긴이가 19세기 유대인 문제와 21세기 무슬림 문제를 등치시키는게 흥미로웠는데, 그렇다면 오일쇼크와 페트로달러 시스템 구축 이후 서구 사회에서 무슬림의 영향력, 포지션의 변화가 있었는지, 다원주의를 명목으로 산유국들의 눈치를 봐서 사회적 갈등을 무마하고 다민족 - 다종교 국가로의 변화를 지배층이 인정하는 것인지 궁금해짐. 이미 연구 자료가 있을 수 있지만, 아직 블루오션이면 나중에 연구하기 괜찮은 주제 같은디..
밀은 정치경제학 초판에서, 경제적 개인주의를 선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의 "궁극적 개선의 이상은 민주주의를 넘어섰고" 그로 하여금 사회주의에 밀착하게 했다.
'우리는 가장 사회주의적인 체제가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되는 개인에 대한 사회의 독재를 힘닿는 대로 배격했지만, 사회가 더 이상 게으른 자와 근면한 자로 나뉘지 않을 때를 바라보았다. 그때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지니라는 규칙이 가난한 자에게 적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을 것이며, 노동의 분업과 생산이 현재와 같이 출생의 우연성에 크게 의존하듯이 의존하지 않고 정의의 승인된 원리에 따라 합의하에 이루어질 것이며, 인간이 배타적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유하는 유익을 얻는 데 힘껏 노력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지 않고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사회적 문제가, 어떻게 최대 다수 개인의 행동의 자유를 지구의 자원에 대한 공동 소유와 노동 협력의 유익에 대한 모든 사람의 평등한 참여와 통합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고찰했다.' - 자서전, <틸리 서양철학사> 680-681p.
스펜서는 현대 사회주의 국가를 반대한다. 그는, 전포괄적인 국가 기능들이란 저급한 사회 유형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월한 사회 유형으로의 진보는 기능들의 포기라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시민의 통합적 단체는 각자가 동료 시민의 가장 충만한 삶과 양립 가능한 가장 충만한 삶을 얻도록 하는 조건들을 유지해야 한다. 국가는 내부적 공격을 방어하고 구성원을 외국의 침공에서 보호해야 한다. 국가가 그런 선을 넘어설 때, 정의를 위반한다. 국가 기능들의 확대는 언제나 비참했을 뿐이며, 공평의 고찰에 의하여 주도되는 입법만이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다양한 비정부 기관들은 경쟁이라는 중압감을 느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경쟁은 이 기관들로 하여금 진보를 이루고 가장 쓸모있는 기술을 활용하고 공공 봉사를 위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확보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인간의 사회적,경제적 필요들은 이렇게 해서 가장 잘 채워진다. - 695p.
밀이 얘기하는 건 맑스가 얘기한 높은 단계의 사회주의와 비슷한 게 아닌지? 흥미로운데 사실 전통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밀보단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영향을 훨씬 많이 받았거든여.. 근데 정작 관점들은 이렇게 대비된다는 게 신기. 밀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회주의자여도 밀 좋아할 수 있다구.. 자유론은 받아들일만 하잖음.. 흠흠..
카르네아데스는 스토아학파의 모순을 끄집어내고 모든 지식의 부질없음을 보여주면서 그 체계를 공격한다. 그는 세계가 합리적이고 아름답고 선하지 않다는 근거에서 그들의 목적론적 신존재증명을 반박한다. 그럴지라도, 그 증명은 한 신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신 혹은 세계 영혼의 개념은, 만일 그 신이 감각이나 감정을 갖고 있다면 변화할 수 있으며, 변화할 수 있는 신은 영원할 수 없다는 근거에서 비판받는다. 반면에 만일 그가 변화할 수 없다면 고정된 무생물적 존재이다. 만일 신이 물질적이라면 그가 변화할 수 있고 사멸 가능하다. 만일 그가 비물질적이라면, 감각이나 감정을 갖지 못한다. 그가 선하다면, 도덕법에 의하여 규정되며 따라서 최고의 존재가 아니다. 그가 선하지 않다면, 인간보다 열등하다. 신의 관념은 모순으로 충만하다. 우리의 이성은 그를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하다. - <틸리 서양철학사> 191p.
이러한 문장들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왜 노동이 늘 노동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를, 왜 노동은 이제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또는 왜 노동이 지금까지는 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태껏 인간의 본질과, 인간과 자연의 양극의 대립은 발전되지 않았다. - <독일 이데올로기> 246p.
결국 마녀광의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에게 전가시켰다는 데 있다. 이 괴물의 환상적인 행위 때문에 고통받고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교회나 국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대중과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성직자와 귀족들은 도처에 흩어져 있지만 간파해내기 힘든 적들에게서 인류를 보호해주는 위대한 보호자로 등장했다. - <문화의 수수께끼> 308p.
마녀광란은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잠재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들의 저항운동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이웃끼리 서로 싸우게 하며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시켰고 무기력하게 했다. 그 결과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했으며 단순한 지역적인 문제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의 재분배와 사회계급 타파를 요구할 수 있는 능력과 교회 및 사회제도에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박탈했다. 마녀광란은 과격한 전투적 메시아니즘을 거꾸로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마녀광란은 사회특권층의 마법적 총탄이었다. 바로 이것이 마녀광란에 감춰진 비밀이었다. - 310p.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현상을 보고 현재의 '마녀사냥'은 무엇인지, 지배계급은 무엇을 감추고 싶어하는지를 읽어내야 한다. 그것이 사학도로서, 사회과학도로서의 임무이다.
복잡하고 자민족중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의식의 양식에 더욱 탐닉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마녀나 메시아들과는 분명히 다른 어떤 것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더 무서운 전율도 정신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제의(약물주입을 통한)도 더 익살스러운 관념의 유희도 필요치 않다. 나는 생활양식의 현상들을 잘 이해할 경우 도래하게 될 천년왕국적인 찬란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인 의식을 비신화화하려 애씀으로써 평화와 정치, 경제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건강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만약 사회의 불평등한 요소를 우리의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그토록 희박하다면 생활양식이라는 수수께끼의 영역 속으로 과학적 객관성을 확장하는 것이 도덕적 지상명령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직 손도 대보지 않은 것이다. - 339-340p.
빈활 문화제에 참석했는데 이 노래를 부르더라. 한대음 수상했다고 해서 많이 들었던 노래인데 다시 들으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너희가 먹는 빵을 만드는 사람일 뿐 포도주를 담그고 그 찌꺼기를 먹을 뿐 내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소 마녀가 나타났다 폭도가 나타났다 이단이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굳이 정의해본다면 혁명이란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압제자들을 타도하고 강적과 투쟁하기 위해 필사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함을 의미한다. 여러 계급,인종,민족이 늘 그런 강적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들이 비합리적인 이데올로기로 기만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상반된 양자택일적 대안 가운데 큰 위험을 감수하며 어느 하나를 택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가 활동하던 그 시기의 유대인들에게 전투적 메시아니즘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원후의 혼란스러운 팔레스타인 지역 상황과, 성경에 담겨있지 않은 예수의 성격을 밝히는데 좋은 텍스트. 한편으론 이 책을 읽으니 국가에 대한 저항 행위를 '폭동'으로 보며 탄압하는 기독교인들이 좀 황당하군. 뭐 개구리는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법이니..
중동은 돼지사육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다. 그러나 돼지고기는 아주 맛있는 고기로 귀하게 여겨진다.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따라서 야훼는 돼지가 불결하니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명령했다. 알라신도 같은 이유에서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중동지방은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기에는 생태학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지역이었다. 소규모 사육은 유혹만 커지게 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차라리 돼지고기 식용을 전면 금지하고 양,염소,소 등을 치는데 모든 정성을 다 바치는 것이 더 나았다. 돼지고기의 맛은 좋지만 사료와 시원한 돼지우리를 만드는 비용은 너무 비쌌던 것이다. - <문화의 수수께끼> 78p.
유물론적 문화인류학 접근은 넘나 중요하다. 종교적 관념을 꿰뚫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신학과 문화인류학은 같이 가야하는 학문이다(그런 점에서 연세대에 두 학과가 같이 있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유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학과 문화인류학을 더 공부해 나 자신이 이성에 기반한 신학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