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7. 19:23 문화 평론
데미안 독후감(2021년 작성)
나는 데미안을 3번이나 읽었다. 초등학교 때 1번, 고등학교 때 2번.
뭐 그리 대단한 책이라 3번이나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내가 이 책보다 좋아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3번 쯤은 읽어줘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듯한 책이다. '철학서'라는 타이틀로 소개되기도 하는 책이다 보니 신비주의적 요소를 어느정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책의 줄거리는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기이다. 책 제목인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주요 인물인 막스 데미안의 이름을 딴거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에밀 싱클레어가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결국 합으로 나아가는 일들을 묘사해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관념론적인 부분이 많이 나오니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으로 이해했달까.(물론 내가 헤겔을 이해했을리 만무하지만.)
이렇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티테제의 제시자들을 파악해야 한다.
뭐 프란츠 크로머, 막스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알폰스 벡 정도가 있지 않겠는가. 이 4명은 싱클레어가 나아가는 길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세상을 2가지로 쪼개서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싱클레어가 크로머를 만나기 전까지 살아왔던 세계는 절반의 세계, 빛의 세계(이 두개는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고 나는 판단한다.)이다. 거의 집 안에서의 상호작용으로만 일어나는. 그리고 가족들 품에서 유복하게 살아가는.
그러나 크로머가 등장하면서 그가 살아왔던 절반의 프레임이 깨지기 시작한다. 데미안이 아닌, 크로머를 만났을 때부터 알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세상이 존재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크로머는 절반의 세계의 반대편에 서있는 존재고, 어둠의 세계에 속해있는 존재다. 선 악 대비 구도에서 분명한 악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한 구도는 데미안이라는 캐릭터에서 깨진다. 데미안은 절반의 세계에 반대편에 서있는 존재는 맞다. 그는 카인을 옹호한다. 기독교 세계에서 최초의 살인자이자 어찌보면 악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카인을 긍정하고 그가 강자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우월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 해서 그를 음해했다고 본다. 이는 성경의 내용을 정면으로 부딫치는, 신성모독적 행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어둠의 세계에 속해있지는 않다. 주인공을 도와주고, 주인공이 일탈행위를 하는 것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빛의 세계에 속해있는 존재인 것이다.
선 <-> 악 구도에서 데미안은 선이다. 기존의 세계 <-> 새로운 세계에서 데미안은 새로운 세계에 속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캐릭터는 작 중 데미안이 유일하다.
이후 만나 주인공의 김나지움 시절 일탈을 유도했던 백은 개인적으로 선 <-> 악 구도에서만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뚜렷한 특징도 없다. 그저 의도치 않은 악한 역할을 했을 뿐이다. 피스토리우스는 기존의 세계 <-> 새로운 세계에서만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세계에 속해있는 존재다.(결국 기존의 세계로 회귀하게 될 운명인 존재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중심 안티테제 제시자들에 의해 데미안은 끊임없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크나우어와 같이 불안정한 친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스스로도 크나우어의 안티테제 제시자가 된 것이다.
결국 전쟁과 부상, 마지막에 데미안과의 접촉을 통해서(이 때 접촉은 실제 데미안이었을 가능성은 희박한데, 싱클레어의 상상이었을까 데미안의 영이었을까? 헤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쓴건지 궁금하다.)자기 자신이 데미안과 같은 존재, 새로운 테제를 가진 인간으로 일종의 진화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테제와 안티테제의 수많은 교차, 정-반의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합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내가 봐도 무리인 도식화라고 볼 수 있는데, 누군가 비판을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은 서로의 주장과 반박을 통해 성장하니 말이다.
+(2022.01.21) 데미안과의 (정신적) 접촉(안티테제와의 접촉) -> 데미안의 물리적 소멸(사망) -> 정신적 합일을 통한 새로운 테제를 지닌 인간(싱클레어)
안티테제의 소멸을 통한 원래 테제와의 융합과 새로운 테제로의 발전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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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면 니체 철학 공부도 안하고 철학적 분석을 시도했다는 게 좀 부끄럽지만 나쁘지는 않은 거 같다.
넛지 독후감, 너의 이름은 감상평도 있으나 차마 올리기가 민망한 수준이라 올리지 않겠다..
이때는 무언가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읽는 건 늘었어도 글 쓰는 능력은 줄어든 거 같아서 좀 안타깝다. 뭐든지 써야 느는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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