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펨코 댓글 눈팅을 자주하는데, 정치적인 글들은 안보려고 노력하지만 눈길이 가는 글들은 클릭해서 보는 편입니다. 근데 댓글에 보면 종종 자칭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에 의한 '신좌파'나 'PC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 많아요. 문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달려들어 까내리는 댓글이 있다는거죠. 사실 그건 어떤 커뮤니티에서든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오늘 본 댓글 중에서는 흥미로운게 있더군요. 전체적인 내용은 미국 민주당/공화당 세력에 대한 글의 댓글이었는데, 댓글의 반절은 글과 관련되어 있었지만 반절은 관련이 없는 자신의 사상을 밝히는 내용이었습니다. 뭔 내용인가 하면, '나는 합리적 보수 -> 신좌파 -> 보수주의자 테크트리를 탔다. 신좌파에서 보수주의로 전향한 이유는 위문편지 사건을 통해 우리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진다는 걸 느끼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직까지 리버럴적인 관점이 남아있긴 하다.'

뭐 맞는 말이라면 맞는 말인데, 저 사람이 말하는 '신좌파', 더 넓게 보면 커뮤니티와 여러군데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신좌파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런데, 신좌파가 도대체 뭘까요?

사실 신좌파라는 용어가 여러군데서 참 파시즘, PC주의 만큼이나 남용이 되는데, 뭐 대충 정의를 해보자면 68혁명 이후 튀어나온 좌파의 대안적 조류? 뭐 그쯤이 일반적인 해석이죠. 문제는 정의의 단계에서부터 있는데, 보통 이렇게 해석하지만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변형된 좌파들도 신좌파라고 할 수 있고, 일본 같은 경우 일본공산당이 의회주의 전술로 변화하면서 뛰쳐 나온 급진적인 계열의 공산주의자들을 신좌파라고 하죠. 물론 사청동 해방파나 동아시아 해방전선인가 뭔가하는 아나키즘 테러리스트들도 있긴 합니다만.. 여튼 단어 자체의 정의부터가 굉장히 애매합니다. 아도르노는 신좌파입니까? 마르쿠제는 신좌파의 아버지 격인데 아도르노는 68혁명 때 학생들한테 조롱을 당한 뒤 빡쳐서 앓다가 죽었죠. 마오쩌둥은 신좌파일까요? 마오주의는 68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말이죠. 마오쩌둥은 신좌파가 아니더라도 홍위병들은 신좌파인가? 한국으로 들어와보자면, NLPDR은 신좌파인가요? 애초에 한국에서 소위 운동권으로 여겨지고 지금까지 내려오는 직계 파벌들이 크게 NL, PD인데(이런 개념이 한 물 간지는 한 20년, 계파도 붕괴된지 한 3년 됐습니다만 편의상)이 분들도 애초에 80년대는 돼야 이론적 확립과 활동이 된단 말이죠. 68혁명 있은지 10년 넘은 뒤.. 신좌파 아닐까요?

정의 말고도 신좌파라는 워딩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신좌파가 아니라는 겁니다. 68혁명 기준으로 잡아도 1968년은 지금으로부터 55년전인데, 어느 세상에 55년전에 생긴 사상에 '신'이라는 개념이 붙는답니까? 이미 tankie라 불리는 반수정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도 전위당이고 뭐고 없는 세상에서 대안적인 부분운동을 어느정도 받아들였단 말이죠. 정말 일부 ML이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이야 "성매매 합법화", "산업화 지속" 이런걸 외치지만, 왠만한 양반들은 이제 여성운동, 환경운동, 시민운동 같은 곳과 교류를 하기 마련입니다. 애초에 한 줌 좌파에서 연대가 생명인데 안 할 수도 없기 마련이고.

구좌파/신좌파, 마르크스주의/포스트모더니즘주의(?), 페미니즘/여성해방론, PC/민중 이렇게 딱딱 나눌수도 없고 나눠지지도 않는, 흑백이 아닌 회색지대가 이렇게 넓은 세상에 신좌파라는 워딩을 함부로 사용하는 게 좀 안타깝습니다. 정치학의 겉핥기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밖에도 철학의 겉핥기, 경제학의 겉핥기 등 문제는 많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그렇지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였다보니 만큼 어떤 사안이든 유물론과 변증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해석하려 했고, 변증법에 대비되는 걸로 보이는 형이상학이라는 개념과 플라톤 같은 철학자는 헛소리 하는 인간들로 여겼습니다. 요즘은 맬서스한테도 배울게 없나 생각하지만요..(근데 맬서스는 인구학적 관점에서 통찰력이고 나발이고 결론이 똥인 인간이라 좋게 보이진 않네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라는 단어를 본 다음에는 그거에 꽂혀서 모든 국가기관과 시설에 대한 글을 쓸때 ISA 개념을 차용해 뿌렸었죠. 이데올로기 이론의 출발도 알튀세르인 줄 알았는데 그냥 마르크스부터 시작이더군요. 알튀세르가 국가 기구에 대한 분석과 호명 이론 등을 통해 발전시킨 건 맞지만 슬로베니아 학파를 통해 비판받은 부분도 있고, 발리바르에 의해 발전된 부분도 있는 완벽하지는 않은 학자구요. 또 최근 - 그리고 지금까지는 사르트르, 포스트모더니즘, 미셸 푸코, 구조주의에 꽂혀서 뭐만 하면 타자, 구조, 미시물리학 생각을 했던거 같습니다. 정작 읽었던 감시와 처벌은 구조주의적 저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걸 오늘 책 읽으면서 알게 된..

변증법적 유물론이 인생의 진리인 줄 알았는데,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일 뿐이고, 칼 포퍼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주의(신 플라톤주의에 더 가까우려나요), 파시즘과 비슷한 환원론적 사상.. 이라는 걸 보면 결국 오늘도 소극적 회의주의입니다. 아아 흄 센세 왜 당신이 그렇게 영국인들한테 빨리는지 이제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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