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다. 정확히는 조종사였다. 초등학생때는 한국항공대학교에 가고 싶었고, 중학생때는 공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으며, 고등학교때는 꿈을 접었다.
이상은 너무나 높고, 현실은 너무나 낮다. 한국에서 정규코스를 밟아 민항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억겁의 시간이나, 억대의 돈을 들여야 하는게 현실이다. 군생활을 10년 이상 하던가, 1억 이상의 돈을 들이던가. 물론 뭘 선택하던지 무조건 조종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1년에 수많은 사람들이 PPL 면장을 따고, 조종사의 꿈을 키운다. 대부분은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면장을 땄지만 항공사에 취직하지 못하는, 소위 '비행낭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돈도 없고 몸도 안좋은 내가 조종이라는 분야에 뛰어든다는 건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의, 일종의 자살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가서 조종사를 하는 것도 잠깐 생각해봤지만, 돈은 비슷하게 들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그게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는게 난센스다.
항공 관련 분야도 마찬가지다. 관제사, 운항관리사 자격증 취득 인구도 고용수요보다 많다. 항공대, 한서대와 같은 항공 쪽에서 나름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이런 생각들로, 나는 꿈을 접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수시 1차 합격증 뿐이다. 물론 면접에 갔어도 떨어졌겠지만.
그런데, 이런식으로 꿈을 포기하는게 맞는걸까?
항공운항학과, 갈 수 있었다.(물론 항공대 항공운항학과는 성적이 안됐다.) 항공운항학과가 늘어나면서, 내 성적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항운과가 있었다.
항공 관련 업무를 배울 수 있는 학과, 갈 수 있었다. 아태물류학부도 정시로 충분히 갈 수 있었고, 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른 대학을 선택한 것 뿐이다.
미국에 가서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을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 만으로 접은 것, 말도 안된다. 국내에서 공부, 어학연수 등 방법은 너무나 많고, 전세계적으로 항공수요는 최소한 줄어드는 추세는 아니다. 사실 한국을 벗어나 서양쪽으로 가면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 자체는 훨씬 쉬워진다. (물론 가도 돈도 많이 들고, 리저널에서 구르는 동안은 거의 열정페이 받으면서 일하긴 한다.)
결국 못하는 것이 아닌, 안하는 것일 뿐이다. 일종의 현실도피를 하는 것이다.
근데.. 내가 과연 도전할 수 있을까? 수능을 다시 보고, 항공운항학과나 항공교통물류학부를 쓸 자신이 있을까? 지금 다니는 대학을 자퇴하고?
미국에 유학을 갈 자신은 있을까? 언어도 돈도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인데? 영어를 배울 의지도, 돈을 벌 의지도 없는 잉여인데?
미래의 내가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선택을 미뤄두고 싶다. 최소한 올해까지는.. 아직 젊고, 기회는 많다고 자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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