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 18:16 문화 평론
영화 두 편을 보고
두 영화를 봤다. 금요일에는 '김종욱 찾기' 를, 토요일에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를.
사진만 봐도 대충 느낌이 오겠지만 둘은 어찌보면 양극단에 있는 영화다. 물론 둘 다 장르 영화의 색채가 진하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액션 영화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둘 다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둘의 공통점은 '장르를 잘 살렸다', 단점은 '그 밖에 것들'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종욱 찾기를 본다면, 사실 배우의 얼굴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조합이 아니겠는가. 전반적으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고 하기는 힘들고, 코믹한 장면에서 감성이 영 구시대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부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재치있는 부분이 곳곳에 들어나고, 굉장히 정석적인 로코 스타일의 영화를 구현했기에 부담이 없고 시청하기에 굉장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평은, 한국 영화 특유의 신파 조라고 해야할지, 톤이 드러나지 않아 좋다고 했는데,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과거에 봤던 '플랜맨' 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는데, 사실 구체적인 서사는 달라도 '김종욱 찾기' 와 큰 틀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은 작품이나, 마지막 10분의 서사가 굉장히 별로였다. 개연성을 만들려다가 작품의 완성도 자체를 하락시켰다라고 해야할지, 신파 류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지 꽤 되었는지라 요즘은 그런 씬이 들어간 작품이 많이 안나오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어쨌든 제목 센스가 좀 부족한 작품이지만 2시간을 투자하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솔직히 남녀 간의 감정선이 연애를 안해본 사람인지라 좀 받아들여지지 않는 씬도 있다.. 이래서 영화든 소설이든 이전에 뭐든지 경험이 많아야 하는 거 같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어떤 작품이냐, 장르 영화로서 충실한 건 김종욱 찾기와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가 액션 영화를 보는 이유는 액션이 얼마나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느냐,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합리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씬들의 밀도가 높고, 전개도 깔끔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황정민이 죽인다, 죽이기 애매하면 손가락만 뽑아낸다. 이정재가 열심히 칼질한다, 그리고 칼을 씻어내고 또 칼질을 한다. 시시하게 한 두명 죽이는 거 아니다, 5-6명씩 쑥쑥 죽인다. 기왕에 죽이는거 총으로도 죽인다. 이 얼마나 관객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주는 영화인가.
물론 이런 영화에 서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서사적으로 관객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감독판을 보면 보충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감독판이 19금인 것을 보면 아마 좀 더 액션신의 강도가 높아진 거 말고는 차이가 크지 않을 거 같다. 그리고 일단 극장에 걸린 본판 기준으로 해석하는게 합당하다고 보는 입장인지라..
이제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영화란 본질적으로 듣는 것도 아니고, 읽는 것도 아니다. 보는 것이다. "영화란 카메라로 찍는 것이구나" 라고 고등학생 시절 정성일은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도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의 처음은 무성흑백 영화였다. 무성 흑백 영화로 얼마나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지가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영화의 라이트한 팬인지라 흑백 영화 같은 건 손에도 대지 않지만.. 여하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선 많은 대사도 필요 없다. 말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건 보여주는 것이다. 백문불여일견을 가장 합리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매체인 것이다. 괜히 자본이 집약되어 제작되고, 사람들이 많이 감상하는게 아니다. 영화보다 소설을 추천하는 경우도 많은데, 21세기에 이야기를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영화가 아닐까. 무엇이 더 낫다 못하다 논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두 영화를 바라보면, 역시 좀 더 고평가 받을 만한 작품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다. 물론 '김종욱 찾기' 와 일대일 비교가 가능한 작품은 아니다. 감각 자체가 다르니까. 하지만 김종욱 찾기의 안타까운 점은 말해주지 않아도 될 부분을 말해준다, 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 이장과 군수를 보면서 중간에 동사무소 직원이었나? 하는 배역으로 나온 여자가 섹드립 비스무리한 대사를 했던 걸 봤다. 그걸 이장 역인 차승원이 참 부적절한 발언이다, 뭐 이런식으로 받아쳤는데..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대사의 윤리적 측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 차원으로 고찰해봐도 참 부적절했다. 그 장면에서 왜 굳이 그런 대사를 넣었을까, 안 넣으니만 못한 대사였다.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 섹스어필을 하고 싶다면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고, 성적인 농담은 영화에 그냥 필요가 없는 거 같았다. 코미디 영화기 때문에 다양한 유머를 알뜰 살뜰하게 종합선물세트마냥 넣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김종욱 찾기는 그정도로 황당한 대사는 없었던 거 같지만, '보여주는 걸로 충분할텐데..' 라고 생각되는 장면은 몇몇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말이 많지 않다. 하드보일드다.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그 시간에 그저 보여줄 뿐이다. 물론 개연성이 부족한 씬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씬을 굳이 말로 합리화시키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액션은 슬로우모션이 두드러지만, 굉장히 고전적인 배우끼리의 합을 맞춰 소위 '무쌍을 찍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 또한 액션 장르의 정석적인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원래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은 초인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덧붙여, 보여주는 것의 장점은 더 있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가 해석할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도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결국 보는 이의 해석이 무궁무진해질 수 있는 건 소설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영화를 하루에 한 편씩 보는 행위는 과연 합리적인 행위일까, 일단 소설은 읽기 귀찮고, 게임은 재미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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