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2월. 트로련이 혁공동으로 개칭.

 

1958년 8월. 사회당 입당전술 기각으로 오오타 류의 일파가 탈당, 트로동 결성.

 

1959년 8월, 혁공동 제1회 대회에서 구로다 간이치 제명, 혼다 노부요시를 위시한 반스탈린주의자파가 탈당, 혁공동 전국위 결성.

 

결국 혁공동에 남게 된 것은 사이쿄 츠카사, 오카 스스무가 지도하는 혁공동 관서파뿐이었습니다.

 

이제, 전국위로 분열된 사람들은 일단 제쳐놓고 혁공동 4인터계에 중점을 두고 얘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먼저 오오타 류를 중심으로 한 트로동은, 나간 이유에 걸맞게 일본 사회당의 지역 조직에 입당전술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트로동은 1958년 12월, 발전적 해소를 하고 "국제주의 공산당(ICP)"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ICP는 아무래도 사회당 내부에서 활동하던 단체인지라 상대적으로 온건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1960년 6월. 미일 안전 보장 조약의 재협상을 둘러싸고 "안보 조약 폐기"를 주장했던 일본 사회당, 공산당, 공산주의자 동맹 등이 나서서 투쟁했던 이른바 "안보 투쟁"이 한창 전개되던 때에 뜬금없이 오오타 류는 혼자서 독단적으로 도쿄의 오차노미즈역에서 "대중은 무장봉기하라!" 라는 삐라를 뿌리다가 "비조직적인 도발행위"로 제명을 당합니다(...) 그리고 1963년에 다시 ICP에 "지도자"로 영입이 되는 과정을 거쳐 1965년 2월에 ICP와 관서파와 합치게 돼 다시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남아있던 관서파는 뭘 하고 있었냐? 이 쪽은 먼저 1960년 11월에 "제4인터내셔널 일본위원회"라는 단체의 다수파와 통합해 4인터 일본 지부를 형성합니다. 또한 이쪽은 일본 신좌파 특유의 과격한 투쟁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었는데, 사이쿄 츠카사가 공산당원 시절 경험한 산촌 공작대, 핵심 자위대와 같은 무장 투쟁을 위한 기구들이 결국 몰락하는 걸 보면서 그런 스탠스를 취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1960년 안보투쟁 당시 공산동이 주도하던 전일본 학생 자치회 총연합, 약칭 전학련의 전술을 비판하고 동시기에 일어났던 미츠이 광산의 정리해고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미이케 광산에서 무기한 파업을 결의하고, 일본 노동 조합 총 평의회가 지지하여 자본과 노동이 격렬하게 맞붙었던 "미이케 투쟁"에 집중해 "전국 탄광 국영화, 노동자 관리"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했던 부분이 운동 내부에서 "경제주의자"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뭐 어쨌든 어찌저찌 조직이 운영되다가, ICP와 통합해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제4인터내셔널 일본지부), 약칭 JRCL"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결합이 있으면 분열도 생기는 법. JRCL의 사회당 입당전술 및 제4인터내셔널 국제서기국의 영국 노동당 비판적 지지 노선과 노동자 국가에 대한 문제로 새로운 조직을 세우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4인터내셔널 중앙서기국"이었습니다.

 

이 단체의 대표적인 주장을 살펴보면 크게 "부르주아 국가를 지지하는 기구로 변모한 스탈린주의적 or 개량적인 성격을 띄는 각 국의 공산당, 노동당 비판적 지지를 멈추자!" 와 "중화인민공화국,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미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중공과 베트콩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닌 국제적인 반전 혁명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정도가 있습니다. 이 당시 이들은 제4인터내셔널 국제서기국 대회에서 프랑스의 노동자 투쟁(LO)과 "노동자 국가 무조건 옹호에서 벗어나 중공 비판적 지지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던걸로 보이나, 국제서기국에서는 "국가자본주의론과 동일한 경향이다"라면서 주장을 반려함에 따라 중앙서기국은 1966년부터 완전히 독자적인 노선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사안에서는 LO와 같은 입장에 서 있었으나, 그 이후에 서로 갈 길 가면서 중앙서기국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IBT에서 튀어나온 후 같이 나온 BT와도 같이 활동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볼키그룹이 떠오르네요.

 

아무튼 이 중앙서기국이라는 단체는 현재도 "국제 사회 평론사"라는 출판사를 기반으로 도쿄와 오사카에 지부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이트의 업데이트는 2016년에 멈춰있습니다. 원래부터 사이트 개설년도인 2003년 이후 거의 1-2년에 한 개 꼴로 글이 올라오긴 했지만, 그마저도 2016년 이후로는 안올라 오는 것을 보면 과연 활동이 지속되고 있는지 의문인 단체입니다.

 

http://www.maroon.dti.ne.jp/fourthint/index.html - 제4인터내셔널 중앙서기국 사이트 링크입니다.

 

그리고 이 중앙서기국 내부에 있던 주오대 세포조직이 분열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또 그 단체도 분열되어서(...) "역사 과학 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든 뒤, IBT의 전신으로 유명한 "국제 스파르타시스트 경향(iSt)"라는 단체와 통합하여 1988년에 "스파르타시스트 일본 그룹"이라는 조직을 차리게 됩니다. (iSt는 이후에 "국제 공산주의자 동맹(4인터내셔널), 약칭 ICL(FI)"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 스파르타시스트 일본그룹은 중앙서기국과는 다르게 기존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현존하는 노동자 국가(ex 중국, 베트남, 쿠바, 북조선)들을 군사적으로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기형적 노동자 국가이긴 하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생산수단의 국유화, 계획경제가 일어났다는 부분에서 방어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따라서 티베트 문제, 대만 문제, 홍콩 시위 문제에서 중공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젠더 담론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고 미성년자의 동성애 행위를 지지(NAMBLA라는 북아메리카 남성/소년애정협회를 지지한다네요), 성매매와 근친상간 처벌의 폐지, 포르노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산력 증가라는 차원에서 공항 건설을 지지해 산리즈카 투쟁엔 비판적이랍니다.(JRCL 및 다른 4인터계는 산리즈카투쟁에 참여했습니다.)

 

https://www.icl-fi.org/index.html - 국제 공산주의자 동맹(제4인터내셔널) 사이트 링크입니다. 한국어 번역본도 있는걸로 보아 국내에도 조직원이 1명정도는 있는 걸로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4인터계의 다른 분열상과 내부의 사건사고, 오오타 류라는 인물의 삶 정도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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